2025년 2월 17일 월요일

LFP 배터리 차들을 어이 할꼬?

  중국에서 판매하거나 수출하는 대부분의 전기차는 배터리로 LFP(리튬, 인산, 철)를 사용하고 있습니다. 물론 국산이라고 LFP를 사용하는 전기차가 없지는 않습니다. 기아 레이 전기차가 그렇고,  KG 모빌리티에서 판매하는 전기차들이 LFP를 배터리로 사용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LFP 배터리는 만들기 쉽다는 장점이 있지만, 이것을 제외하면 다른 모든 것이 단점 투성이입니다. 첫째,  에너지 밀도가 낮아서 같은 용량의 전기를 충전하려면 훨씬 더 많은, 즉 무거운 무게를 가져야 합니다. 둘째, 전기적 특성으로 인해 우리나라의 겨울과 같은 추운 계절에는 그 성능이 엄청나게 떨어진다는 것입니다. 셋째로는 이것이 가장 중요할지도 모르는데, 재활용이 불가능하다는 것입니다. 배터리를 재활용하는데 만약 1,000원을 투입한다면 최소한 1,500원 이상이 나와야 어느 업체라도 재활용 사업에 뛰어들 수 있는데, LFP 배터리는 투입한 자금보다 더 적은 회수 비용이 나옵니다. 그러니 정부 차원에서 일부러 지원금을 주지 않는다면 아무도 재활용을 하지 않을것입니다. 네번째는 LFP 배터리의 특성상 오랫동안 사용하면 점점 더 성능이 저하된다는 것입니다. 짧으면 5년, 길어도 7년이면 원래 성능의 70% 이하로 떨어집니다. 원래 충전해서 사용하는 2차 전지인 배터리는 원래 성능의 70% 이하가 되면 그 수명을 다 한 것으로 봅니다. 즉 사용할 수 있는 한계가 5년에서 7년 사이라는 것이죠.


  그런데 KG 모빌리티는 배테리 제작사에서도 해주지 않았던 품질 보증을 회사 자체적으로 10년 보증을 한다고 공언했습니다. 결국 5~7년 뒤면 원래 성능의 70% 이하가 된 차들이 쏟아질 것인데,  그 회사는 무엇을 믿고 그런 헛된 공약을 했는지 모르겠습니다. 그래서 LFP 배터리를 사용한 기아는  레이 전기차의 배터리에 대해 3년 6만km 이내로만 보증하고 있습니다. 1992년부터 전기차를 만들어 봤던 현대, 기아차는 LFP 배터리의 특성에 대해 잘 알고 있거든요. 게다가 우리나라 2차 전지 3사는 이미 LFP 배터리의 특성에  대해 2011년까지 거의 모든 특성 파악을 다 했습니다. 중국 최대 배터리 회사인 CATL이 2023년에 내놓은 최고 특성의 LFP 배터리 수준을 이미 삼성 SDI는 2011년에 달성했었습니다. 그래서 더 이상 발전 가능성이 보이지 않자 바로 삼원계(NCM)로 소재를 전환했지요.

  그나마 우리나라는 전기 포터와 봉고, 레이 전기차, KG 모빌리티의 차 등 일부 차종만 LFP를 사용하고 있습니다. 지금까지 팔린 전체를 다 합해봐야 10만 대를 넘기지 못하죠. 그런데 중국은 LFP를 사용한 전기차 판매가 한 해에 400만 대를 넘어갑니다. 결국 10년이 흐른 뒤에는 그 엄청난 배터리 물량들이 다 폐기물로 나올 것인데, 그것을 어떻게 처리할 것인지 궁금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중국은 국토가 넓으니 그곳들을 폐 배터리로 산처럼 쌓으려고 할까요? 그렇게 쌓여진 폐 배터리에서 흘러나올 수밖에 없는 중금속들은 어떻게 처리를 할까요? 어차피 우리나라 이야기도 아니고, 남의 나라 걱정을 일부러 사서 할 필요는 없으니, 뭐 저에겐 상관없겠습니다. 전 지구적 악당이자 빌런인 중국이 아마도 그 위치를 더 공고히 하는 그런 계기가 되겠지요. 

  얼마 전, 매년 줄어들던 남극의 오존 구멍이 다시 커지는 일이 발생했었습니다. 그동안   전 지구적으로 CFC(프레온 가스)의 사용을 억제했었기 때문이었는데, 갑자기 줄어들던 오존 구멍이 다시 커지는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그 이유를 우리나라 연구진이 밝혀냈었습니다. 제주도에서 측정한 대기 중 CFC의 농도가 높아진 것이 그 이유였는데, 제주 상공의 CFC는 오직 중국에서의 사용 말고는 그 어떤 것으로도 설명할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NASA도 한반도를 지구 대기 환경의 변화를 관측하기에 가장 좋은 나라라고 했었죠. 왜냐하면 중국의 산업 폐기물과 대기 중에 노출시킨 많은 화학 물질들을 감시할 수 있는 최적의 장소가 바로 한반도이거든요.

  그나저나, 지금까지도 안 좋았던 중국의 이미지는 앞으로도 좋아질 가능성은 요원해 보이며, 오히려 그 역할을 더 강화하지 않을까 합니다. 미국이 중국과 싸우는 그런 형국이 아니라 전 세계가 중국과 싸우는 그런 모양새가 될 충분한 이유가 차고도 넘치지 말입니다. 뭐, 남의 나라 걱정이니 제 일은 아닙니다. 제 코가 석 자인데, 남의 걱정 할 여유가 어디 있겠습니까.

2025년 2월 12일 수요일

백번째 원숭이 효과

 생물학계에는 '백번째 원숭이 효과'라는 아주 오랜 이론이 있다. 일본의 한 연구자가 발표한 논문으로 인해 알려진 내용인데, 이것은 한 무인도에 사는 원숭이 집단에게 먹이로 자연 상태에 가까운 고구마를 주면서 발견한 이론이다. 갓 캐낸 고구마를 흙이 묻은 상태 그대로 공급하였고, 원숭이들은 처음에는 흙을 털어 먹기 시작했다. 그러다가 무리들 중 젊은 암컷 원숭이들이 그 고구마를 바닷물에 씻어 먹기 시작하였다. 그냥 흙을 털어낸 것보다는 고구마는 깨끗이 씻겼을 뿐 아니라 바닷물의 짠 맛이 더해져 오히려 더 단맛이 나는 것이었다. 그리고 그런 현상은 전체 원숭이 무리들에 퍼져 다른 원숭이들도 따라 해 바닷물에 고구마를 씻어 먹기 시작하였다. 이것을 처음 발표한 학자는 원숭이 무리가 약 백 마리 정도가 되면 무엇인가 새로운 시도를 하는 이들이 나타나기 시작하고, 이것이 더 좋으면 무리의 다른 이들도 따라하게 된다는 내용으로 발표를 하였다.


  이것은 나중에 자연의 변화에 대해 어느 정도 이상의 무리가 되면 새로운 시도를 하는 이들이 나타나게 되고, 이런 변화에 대한 적응이 이루어지면 자연계에 새로운 경향이 나타나게 된다는 것으로 발표되었다. 이런 자연의 변화에 대한 적응을 통해 동물들의 행동 변화가 나타나게 되면 이것이 곧 진화의 경향으로 나타나게 되는 것으로 발표되었다.


  그 원숭이 무리들 가운데에서도 젊은 암컷이 가장 먼저 변화를 시도하였으며, 나중엔 젊은 수컷들이, 그리고 늙은 암컷들이, 마지막으로 늙은 수컷들이 그런 변화를 받아들이게 되었다. 무엇인가 새로운 시도를 통해 생물 종들은 행동의 변화를 하게 되고, 이것이 나중에는 진화라는 과정으로 나타나는 것으로 이해되었다.


  그런데 최재천교수는 그의 저서에서 똑같은 현상에 대해 언급하면서 '늙은 수컷들이 기존의 행동을 고수함으로서 전통이 유지된다'라고 서술하였다. 그 구절을 읽자마자 '이런 개%&'라는 욕이 튀어나왔다. 과연 그가 생물학을 전공한(세부적으로는 개미가 주 연구분야이지만) 학자가 맞는지 의심이 되었다. 읽고 있던 그의 저서를 집어 던진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이것은 마치 내가 한동대에서 만난 한 교수가 '창조론이 맞다는 것을 입증하기 위해 분자생물학을 연구한다'라는 말을 듣는 기분이었다. 성경에 나온 창조론의 참된 의미는 생명의 존엄성에 관한 것이지, 그것이 생물들이 진화를 거치지 않았다거나, 신의 섭리로 인해 동물들이 변화, 발전해 나갔다는 것은 아닐 것이다. 최소한 나도 이십 년 가까이 교회를 다녔었고, 세례도 받았지만 결코 창조론이 과학적으로 맞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사실 최재천교수가 언급한 내용 말고도 개인적으로 교수로서 그를 별로 존경하지 않는다. 그가 서울대 교수로 재직하고 있다가 이화여대로 옮긴 이유를 대강 추측할 수 있기 때문이었다. 서울대는 세계적 대학들과 경쟁을 하다보니 교수들의 연구 업적에 대한 압박이 제법 심한 편이다. 하다못해 서울대를 졸업하고, 인하대 화학과 교수로 재직하는 작은 외삼촌도 괜히 교수됐다고, 차라리 의대나 갔으면 돈이라도 실컷 벌었을 것이라고 한탄하곤 했었다. 그나마 경희대 교수로 있는 큰 외삼촌은 '이건 그저 내 업보지'라며 말을 아끼신다.


  최재전교수 입장에서는 연구 성과에 대한 압박이 있는 서울대보다는 이화여대 교수로 가면 대중 강연도 자주 다닐 수 있을 것이고, 연구 성과에 대한 압박도 서울대보다는 덜 했을 것이다. 또한 SCI급 논문을 내는 것 대신 대중 교양을 위한 서적을 집필해도 연구 성과로 갈음이 되기 때문에 굳이 논문을 제출할 필요도 없어진다. 게다가 대중 강연을 다니면 한 번에 수 백 만원의 강의료가 들어오는데, 마다 할 일이 없지 않은가. 그리고 대중 강연이라는 것도 레퍼토리 두, 세 가지 정도를 준비하면 매번 대상이 달라지기에 몇 년은 충분히 우려먹고도 남는다.


  나도 미생물학을 10년간 대학에서 강의를 했었지만, 강의 대상이 간호학과에서 식품영양학과로 바뀌었을 때를 제외하곤 강의록을 전면 개편하거나 하지는 않았었다(생화학을 강의하기도 했었고, 바이러스학을 하기도 했었지만 1학기만이었다). 물론 같은 학과에서, 같은 과목을 강의해도 매년 내 강의를 듣는 학생들은 바뀌기 때문에 강의록을 전면 개편하지 않았다. 다만 매년 새로 나온 과학적 발견이나 소식이 있으면 강의록에 첨가하여 개편하기는 했다. 하지만 어차피 같은 간호학과 학생들을 대상으로 하기에 주로 병원성 미생물에 대한 것과 미생물에 의한 오염과 감염같은 내용이 주를 이룬다. 반면 식품영양학과 학생들이 대상이라면 달라져야 한다. 발효에 관한 내용과 식품 생산 과정에서 생길 수 있는 오염의 방지 등으로 강의 내용을 달리 한다.


  그런 최재천 교수가 진화생물학자들을 만나 인터뷰한 책을 냈다는 어느 블로거 분의 리뷰를 읽었다. 그것도 꽤 오래 전에 인터뷰한 것을 책으로 정리해 낸 것이라고 한다. 그 리뷰에 댓글을 달려다가 내 주제에 뭐를 안답시고 글을 올리나 싶어 참았다. 또한 최재천 교수가 썼다는 그 책도 읽지도 않을 것이다. 자연계의 변화에 대한 행동의 변화, 그리고 그런 적응 과정을 통해 생물들이 진화해 나갈 수 있다는 사실에 대해 전면 부정하는, 오히려 늙은 수컷에 의해 전통이 고수된다는 이론을 들이미는 그의 책을 도저히 편안한 마음으로 읽을 생각이 없기 때문이다.


SMR을 만들겠다고?

   소형 원자로인 SMR(Small Module Reactor)은 사실  이미 현실에 입증된 기술이다. 즉 그것을 만드는 것은 이미 설계도 및 실물이  존재하고, 현재도 운용하고 있는 원자로일 뿐이다. 맨날 SMR을 개발하고 , 현실화하겠다는데 그것이 이미 실현된 기술이라니 조금 황당하지 않은가? 물론 우리나라엔 SMR이 없다. 반면 미국의 모든 원자력 잠수함은(미국은 원자력 잠수함만 운용한다)은 동력원으로 SMR을 가지고 있다. 또한 미국이 운용하는 거대한 항공모함조차도 모두 SMR을 가지고 있는 셈이다. 게다가  원자력 잠수함을 운용하는 영국이나 프랑스도 SMR을 동력원으로 하고 있 다.    

  우리가 보통 운용하는 원자력 발전소는 1.4GWh 정도의 규모를 운용한다. 반면 미국의 원자력 잠수함들은 보통 200~250MW 규모의 가압수형 원자로를 그 동력원으로 하고 있다. SMR은 이미 기술적으로 실현되어 군사용으로는 사용되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왜 현실에선 사용되고 있지 않을까? 그것은 오직 발전 단가  때문이다.  

  원자력 발전소는 각각 지을 때마다 발전소에 맞게 모든 부품을 맞춤 제작을 하고 있다. 다만 그 규모가 워낙 거대하기에 각각의 발전소에서 발전을 할 때마다 발전 단가는 낮게 측정 될 뿐이다. 그러면 단지 이런 원자력 발전을 소형화한 SMR은 왜 발전 단가가 낮아지지 않는가? 그것은 SMR을 몇 개나 지을꺼냐에 달린 문제일 뿐이다. 아무리 작게 SMR을 만들더라도 1개의 SMR을 지을려면 각각의 부품을 맞춤 제작을 해야 한다. 그런데 이런 SMR을 최소 1,000개 이상 한꺼번에 짓게 된다면 각각의 부품을 맞춤 제작하는 것이 아니라 공장형으로 대량 생산을 할 수 있다. 그러면 SMR의 발전 단가는 낮아질 수 있는 것이다.

  그런데 발전소를 짓는 것은 아주 긴 안목에서 국가의 경제 발전이나 산업 생산 능력 등의 발전에 따라 장기적인 관점에서 지어져야 한다. 그런데 규모가 작은 SMR을 겨우 한 두 개를 지으려면 각각의 부품을 맞춤 제작을 해야 하고, 그러면 당연하게도 대규모의 거대한  발전소를 짓는 것보다 당연하게 발전 단가가 올라갈 수밖에 없다. SMR의 발전 단가를 낮추는 유일한 방법은 한꺼번에 수 백, 수 천의 SMR을 제작하여, 각 부품들을 공장형으로 대량 생산을 하면 발전 단가를 낮출 수 있는 것이다. SMR이든, 대규모 원자력 발전소이든 그 원리는 모두 똑같기 때문이다.

  그런데 현실적으로 수 천 곳에 SMR을 각기 지을려면 각기 지역에 따른 수요가 있어야 한다. 그런데 우리나라와 같이 국토가 좁고, 인구가 적은 나라에서 한꺼번에 수 천의 SMR을 지을 필요도, 이유도 없는 것이다. 최소한 SMR을 수 백, 수 천 곳에 지을려면 최소한 인구가 일 억 명은 넘는, 그러니까 최소한 일본의 인구 이상인 미국이나 러시아, 브라질이나 중국, 인도 정도는 되는 땅떵이와 인구가 되는 곳이라야 한다. 결국 우리나라에서 암만 SMR에 대한 기술 개발을 해봐야 국내에 지을 곳도 없고, 지을 이유도 없으며, 결국 할 수 있는 것은 오직 수출 뿐이다. 그런데 중국이라 러시아같은 나라가 우리나라의 SMR을 수입할 것 같은가? 택도 없는 소리다. 그들은 스스로, 자체적으로 원자력 발전소를 지을 충분한 능력을 갖고 있는 나라다. 게다가 미국이 우리 SMR을 수입할 이유도 없다. 오히려 그들은 SMR을 많이 만들어봤고, 만들 수 있으며, 기술력도 훨씬 우리보다 더 좋다. 그렇다면 우리나라가 SMR을 개발했다고 했을 때, 수입할 수 있는 곳은 오직 브라질이나 인도 정도 밖에 없다. 그런데 브라질은 경제 구조상 아직 1차 산업에 의지하는 부분이 워낙  많아서 산업적으로 전기가 그렇게 많이 필요로 하지 않는다. 물론 앞으로 경제가 발전한다면 많은 발전량이 필요로 할 수도 있지만, 그런건 앞으로 수십 년은 지난 후의 일일 것이다. 또한 인도도 마찬가지다. 물론 인도는 신흥 개발국으로 많은 발전 수요가 필요로 하지만 앞으로 언제 개발될지도 모르는 SMR을 기대하느니, 차라리 대규모 원자력 발전소를 짓는 것이 훨씬 나은 현실적 선택일 수 있다. 왜냐하면 전 국토가 골고루 개발되어 전역에 발전 수요가 있는 상황이라면 모를까, 특정 산업단지를 중심으로 발전 수요가 있는 그런 나라에서 각지에 따로따로 지어야 하는 SMR보다는 대규모 원자력 발전소를 짓는 것이 훨씬 더 현명한 방법이기 때문이다.

  괜히 쓰잘데기 없이 SMR을 연구한다고, 개발한다고 돈을 쓰지 않았으면 좋겠다. 물론 우리나라가 SMR을 연구하는 목적이 앞으로 언제가 될 지 모르는 원자력 잠수함을 위한 것이라면 조금은 말이 달라지겠지만 말이다. 아마도 우리나라가 SMR을 개발하려는 목적은 아마도 그것을 위한 것이 아닐까 한다. 그러길 정말 바란다.

2024년 7월 2일 화요일

르노 코리아의 새 로고

 르노 코리아의 한 여직원이 자신의 사상을 드러낸 영상이 문제가 되고 있다. 그래서 그 여직원을 위한 르노의 새 앰블럼이 필요할 듯 해서 한 번 만들어 봤다.

확실히 그 여직원의 취향을 제대로 분석한 듯 하다.


2023년 12월 27일 수요일

출산율 0.7이 의미하는 진정한 뜻

 우리나라의 출산율이 작년인 2022년에 0.78이었고, 올해는 0.7을 밑돌 것이라고 합니다. 그런데 이렇게 출산율이 급격하게 떨어지기 시작한 것이 지난 2016년부터라고 합니다. 그 전까지는 1.0에서 1.2 정도를 오르락내리락 했었습니다. 그러다 2016년부터는 계속 하락하고 있습니다. 근래 계속 출산율이 낮게 나오다보니 이런 수치에 무감각해져 있는데, 이게 얼마나 심각한지 잘 모르시는 것 같습니다.

 

이게 얼마나 심각한지, 다른 예를 들어 설명을 해보겠습니다.

 

일반적인 종이를 접는데 보통 7번 이상은 절대로 접지 못합니다. 겨우 7번이라고 생각하시기 쉬운데, 주위의 아무 종이를 붙잡고 한 번 접어보시기 바랍니다. 과연 6번이라도 접을 수 있는지를 말입니다.

 

왜 종이를 7번 이상 접을 수 없는지 아십니까? 종이는 한 번 접을 때마다 두께는 2배 늘어나고, 접을 수 있는 종이의 폭은 반으로 줄어들기 때문입니다. 두 번을 접으면 두께는 4배 늘어나고, 접을 수 있는 종이의 폭은 1/4로 줄어듭니다. 3번을 접으면 두께는 8배로 늘어나고, 접을 수 있는 종이의 폭은 1/8로 줄어듭니다. 이런 식으로 한 번 더 접을 때마다 두께는 2의 제곱으로 늘어나고, 폭은 1÷2의 제곱으로 줄어듭니다. 즉 7번 접으면 두께는 2의 7제곱, 즉 128배가 됩니다. 반면 접을 수 있는 종이의 폭은 1/128이 된다는 뜻이죠. 종이의 두께가 원래 0.1㎜였다면 7번 접었을 때 12.8mm, 그러니까 1.28㎝가 되죠. 만약 종이의 길이가 1m였다면 7번 접었을 때 종이의 폭은 1/128m, 그러니까 0.78125㎜가 되죠. 두께는 1.28㎝인데, 폭은 0.78125㎜인 종이를 접을 수 있을까요?

 

두께가 0.1㎜인 종이라고 하더라도 30번을 접으면 두께가 약 10억배가 됩니다. 10억배가 되면 얼마인지 아십니까? 10억㎜는 1000㎞가 됩니다. 

 

종이를 7번 접으면 두께가 7배가 될 것처럼 생각하시는데, 실제로는 2의 7제곱이 됩니다. 그래서 일반적인 종이로는 7번 이상 절대 접을 수 없는 것이죠.

 

출산율을 얘기하는데 갑자기 왠 종이접기 얘기를 하느냐고 하실지도 모르겠습니다. 출산율 0.7의 의미가 바로 위에서 예로 들었던 종이접기와 같기 때문입니다. 출산율이 0.7이면 100명의 여성이 평생 70명의 아이를 낳는다는 의미입니다. 그런데 100명의 여성이 아이를 낳으려면 100명의 남성이 있어야 합니다. 일부다처제 국가도 아니고, 100명의 여성이 모두 정자은행에서 기증을 받아 낳을 수도 없기에 100명의 남성이 있어서 가정을 이뤄 200명의 성인이 100쌍의 부부를 이뤄 70명을 낳는다는 의미입니다.

 

자, 그러면 70명의 아이를 낳았다면 한 세대, 약 30년이 흐른 뒤에 인구는 어떻게 되어 있을까요? 200명의 성인이 70명의 아이를 낳았기에 인구는 35%로 줄어들게 됩니다. 지난 2022년의 경우, 초혼이 모두 약 16건이었습니다. 남성의 평균 초혼 연령을 33.7세였구요. 그렇다면 1988년에 태어난 남성일텐데, 1988년에는 총 64만명이 태어났습니다. 1988년에 태어난 사람들의 합계출산율이 0.7이 된다면 2023년에는 22만 4천명이 태어나게 되겠네요.

 

합계 출산율 0.7이면 한 세대, 30년만에 인구가 35%로 줄어듭니다. 그런데 이건 시작에 불과합니다. 이런 출산율이 지속되면 어떻게 될까요? 2024년에 22만 4천명이 태어나게 되었습니다. 그러면 여기엔 남성과 여성이 섞여 있습니다. 11만 2천명은 남자고, 같은 숫자의 여성이 태어나게 되겠죠. 합계출산율이 0.7이 지속되었다고 하겠습니다. 그러면 11만 2천명의 여성은 7만 8400명의 아이를 낳을 것입니다. 그러니까 1988년에 64만명이 태어났었는데, 합계출산율 0.7이 지속되면 2023년에는 22만 4천명이 태어나고, 2023년에 태어난 22만 4천명은 2057년에는 7만 8400명을 낳습니다.

 

뭔가 눈치를 채셨습니까? 합계출산율 0.7이라면 한 세대 후에는 인구가 70%로 줄어드는 것이 아니라 35%로 줄어들게 되는 것입니다. 왜냐면 100명의 여성의 합계출산율은 70명의 아이를 낳는 것이지, 70명의 여성이 아니거든요. 1988년에 64만명이 태어났지만 한 세대 후인 2023년에는 35%인 22만 4천명이, 2024년에 태어난 아이들은 한 세대 후인 2057년에는 7만 8400명이 태어납니다. 다시 한 세대를 지나가 볼까요? 그러면 2090년에는 2만 7400명이 태어납니다.

 

합계출산율이 0.7이면 한 세대가 지날 때마다 인구가 70%씩 줄어드는 것이 아니라 35%로 줄어들게 되는 것입니다. 즉 합계출산율 0.7이 지속된다면 한 해에 태어나는 아이의 숫자는 100년이 지난 뒤에는 1/10로 줄어들게 되는 것입니다. 이게 바로 지수힘수이 비밀입니다. 

 

합계 출산율 0.7은 뭐 거의 나라가 무너지거나 전쟁이 터져도 나오기 힘든 숫자입니다. 심지어 우리나라는 1950년에서 1953년의 전쟁이 있던 시기에도 합계출산율이 2를 넘었었거든요. 유럽에서 0.7의 출산율을 보인 적이 딱 한 번 있었습니다. 그것은 지난 세계 제2차 대전 기간동안에도 그것보다 훨씬 높은 숫자를 나타냈었고, 유고내전 기간동안에도 그렇지 않았습니다. 코소보 내전때에도 그렇지 않았었죠. 오직 딱 한 번, 과거 동독이 서독과 통일이 되었을 무렵 동독지역에서 약 3~5년간 그런 현상을 나타낸 적이 있었습니다. 사회주의 국가에서 자본주의 서독과 통일이 되었을 때, 자신들의 사회가 서독과 엄청난 차이를 보임에 따라 그 충격에 동독 지역의 출산율이 잠시 급격하게 내려갔었던 적이 있었습니다. 물론 서독에 의해 동독지역의 경제개발이 이뤄지면서 그런 현산을 곧 사라지긴 했었지만 말입니다.

 

합계출산율 0.7이면 한 세대가 지난 때마다 그 해에 태어나는 인구는 35%로 줄어들게 됩니다. 한 세대가 더 지나면 다시 35%가 되고요. 그러면 3세대, 약 100년이 지나면 한 해에 태어나는 인구는 4%로 줄어들게 됩니다. 다시 3세대가 더 지나 200년이 흐르면 한 해에 태어나는 인구는 0.1%로 줄어들게 됩니다. 즉 지난 1988년에 약 64만명이 태어났었지만 합계출산율 0.7이 지속되면 200년 후에는 640명만 태어난다는 뜻입니다. 한 해에 640명이 태어나는 국가라... 이건 어느 지방 소도시도 아니고, 무슨 군 단위에나 가야 볼 수 있는 그런 숫자일 듯 합니다.

 

여러분은 믿기십니까? 0.7의 합계출산율이면 우리나라는 200년 뒤에 한 해에 약 640명이 태어나는 것이요. 그런데 숫자는 거짓말을 하지 않습니다.

 

100명의 여성이 합계출산율 0.7이면 70명의 아이를 낳게 되는데, 그 중의 절만은 남자이고, 다른 절반만 여자입니다. 그러니 35명의 여성만 출산을 할 수 있는 것이죠. 그 35명이 합계출산율 0.7이면 24명의 아이를 출산하는데, 그 중에 12명만 여자입니다. 그 12명의 출산율이 또 0.7이라면 8명의 아이를 낳는데, 그중에 4명만 여자입니다. 4명의 여자가 출산율이 0.7이라면 2명의 아이를 낳을 것이고, 그럼 그 2명이 부부가 되겠네요. 그리고 1명의 아이를 낳은 뒤 더 이상 아이를 가질 수 없게 된 처음의 100명의 여성들과 다른 사람들이 모두 죽으면 그 사회는 없어지고 말 것입니다.

 

합계출산율 0.7이 지속된다는 것아 얼마나 무서운 현실인지 이제 조금 실감이 나십니까? 대한민국이 멸망하는 것, 사라지는 것이 결코 어려운 일이 아닙니다. 이런 출산율이 지속된다면 대한민국은 200년 뒤에 더 이상 태어나는 사람은 아무도 없는, 그러니까 그때 살아있는 사람들이 죽으면 그냥 사라지는 그런 나라가 됩니다.

 

대한민국이 변해야 합니다. 그것도 아주 많이 변해야 합니다. 뭘 어떻게 변화시켜야 하는지에 대해선 다음에 다시 한 번 더 써보겠습니다.

2023년 12월 15일 금요일

문제는 출산율이 아니다.

 우리나라의 합계 출산률이 0.7을 밑돌기 시작했습니다. 이는 가임기 여성의 숫자에서 얼마나 많은 아이가 태어나는가 하는 수치입니다. 만약 기대수명이 늘어나지 않는 상황이라면 합계 출산률이 2가 나와야 전체 인구가 일정하게 유지될 수 있습니다. 2보다 적은 수치가 나온다면 전체 인구는 감소할 수밖에 없고, 다만 기대수명이 늘어남에 따라 합계 출산율이 2를 밑돌아도 전체 인구는 늘어날 수는 있습니다. 그런데 이 합계출산률을 계산함에 있어 아주 심각한 전제의 오류를 가지고 있습니다. 이는 단지 여성의 수에서 얼마나 많은 아이가 태어났는냐를 따지기 때문입니다. 즉 여성이 결혼을 했든, 안했든 상관없이 그저 전체 여성의 수에서 얼마나 많은 아이가 태어났느냐를 나타낸 수치입니다.
 
일단 여성이 아이를 출산을 하려면 국내의 실정으로는 결혼을 하거나 또는 성폭행에 의해 원치않는 임신을 할 경우에만 출산이 가능합니다. 출산률이 낮게 나타나는 원인이 아이를 안가지기 때문인가, 아니면 다른 것에 원인이 있는가를 따져바야 한다느 것입니다.
 
2022년 전체 혼인한 커플의 수는 약 19만 1천건입니다. 그중 초혼인 경우가 약 16만건, 재혼 이상인 경우가 3만건이었습니다. 재혼 이상의 경우에선 아이를 낳을 확률이 떨어지므로 실제로 아이를 낳을 수 있는 초혼의 수가 16만쌍에 불과한 것입니다. 이들 초혼 부부가 모두 2022년에 임신을 하고, 2023년에 아이를 낳는다면 최대 16만명이 태어날 수 있습니다. 이는 현재 우리나라가 매년 태어나는 아이들의 숫자를 비교해보면 거의 얼추 비슷하게 맞아들어가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2022년에 초혼을 한 남성의 평균 연령은 33.7세였습니다. 그렇다면 대략 1988년 즈음에 태어난 남성들이 결혼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런데 1988년에 태어난 아이들의 숫자는 약 64만명이 넘습니다. 그렇다면 1988년에 태어난 남성의 숫자는 약 32만명에 가까울 것입니다. 1988년에 32만명에 가까운 남성이 태어났는데, 2022년에 결혼할 커플의 숫자는 약 16만쌍에 그치므로 대략 절반에 가까운 남성들만 결혼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즉 1988년에 태어난 남성들의 경우, 절반에 가까운 사람들만 결혼을 했고, 나머지 절반은 결혼을 하지 않았다고 볼 수 있습니다.
 
물론 1988년에 태어난 남성들이 모두 2022년에 결혼을 하지 않았을 수도 있습니다. 그보다 더 빨리 할 수도 있고, 늦게 할 수도 있죠. 그렇지만 그 전에 태어난 사람들도 있고, 그 후에 태어난 사람들도 있으니 결국 전체적으로 남성들의 절반만 결혼이라는 것을 했다고 볼 수 있습니다.
 
남녀간의 관계에 있어 연애는 여성이 허락을 해야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결혼에 있어서는 여성이 하고 싶다고 할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아직까지도 우라나라의 정서상으로는 결혼은 남성이 하겠다고 마음먹거나, 남성이 청혼이 있어야 가능합니다. 그런데 지난 2022년의 양상을 보면 1988년에 태어난 남성들의 경우, 악 절반만 곃혼이라는 것은 선택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지금 우리 사회의 현실에서 남성은 예전의 가부장적 사회의 가정경제의 지주이자 바깥생활을 담당하는 그런 존재가 아닙니다. ATM기기라고 불리우며 열심히 돈을 벌어와도 퇴근 후에 가사노동의 절반을 부담해야 하고, 아이의 양육에도 일정부분 이상 기여를 해야 합니다. 가사노동이 전적으로 여성의 전담이 아니라 기본적으로 부부가 각각 나눠 담당해야 합니다. 그렇다고 여성이 남성만큼 가정에 경제활동의 성과로 기여하는 것도 아니고, 심지언 결혼을 하면 전업주부를 하겠다는 사람들도 많습니다.소위, 일명 '취집'을 하겠다는 여성이 있는 것이 현실이죠. 그럼에도 남성은 퇴근후에 가사분담 및 아이양육에 기여해야 합니다.
 
남성이 결혼이라는 선택을 하는 순간 경제적 자유에서 벗어나게 됩니다. 결혼을 하지 않으면 자신이 먹을 것과 취미생활을 위한 것 등만 벌면 그만입니다. 중소기업에 다녀 최저생계비에 가까운 소득을 벌어도 자신이 먹을 것과 통신비, 유류비, 취미생활을 위한 것을 충분히 할 수 있습니다. 결혼만 하지 않으면 충분히 경제적 자유를 누리며 살 수 있습니다. 꼭 자기집이 아니어도 상관없습니다. 그저 월세를 내는 원룸이라도 상관이 없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결혼을 하려면 모든 것이 달라집니다. 기본적으로 최소한 전세집 이상은 있어야 여성도 결혼에 동의를 해 줄 것입니다. 나만의 먹을 것이 아니리 결혼을 하면 배우자의 몫과 아이의 것까지, 사계절에 따른 옷도 자기만의 것이 아니라 배우자와 아이를 위한 것까지 벌어와야 합니다. 결혼만 안 했으면 내 소득을 온전히 나만을 위해 쓸 수 있었는데, 결혼을 하는 순간 매달 일정액의 용돈을 받아 생활해야 합니다.
 
내가 대기업에 다니는 것도 아닌데, 전문직 종사자도 아닌데, 결혼만 안했으면 내 소득을 온전히 나만을 위해 쓼 수 있었는데, 결혼을 하면 모든 것이 달라집니다. 이러니 남성들이 결혼을 할 생각이, 엄두가 나지 않는 것입니다.
 
여성인권 향상도 좋고, 페미니즘이 어쩌고 해도 좋습니다. 그런데 남성들은 결혼을 안합니다. 결혼을 하면 손해를 보고, 피해를 입는 것이 남성일진데, 뭐하러 결혼을 선택합니까?
 
결혼을 하면 경력이 단절되고, 임신과 출산, 육아를 하느라 여성이 손해를 본다구요? 그럴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런데 남성들은 결혼만 안했으면 충분히 경제적 자유를 누리며 내가 하고 싶은 것들을 하며 살 수 있었는데, 결혼을 하면 모든 것이 가정경제를 위해 살아야 합니다. 이제 남성은 내가 아니라 우리 가족을 위해 살아야 합니다. 결혼만 안했으면 얼마 되지 않는 월급이라도 충분히 경제적으로 자유로운는데, 결혼을 왜 해야 할까요? 어차피 남자는 혼자 살아도 빨래를 하고, 밥도 짓고, 청소를 합니다. 결혼한다고 그런 것들을 안할 수 있는 것도 아닌데, 내것이 아닌 가족의 몫까지 벌어와야 합니다.
 
지금 우리나라의 출산률이 낮은 것은 결코 여성들이 아니를 안낳거나, 적게 가져서 그런 것이 아닙니다. 그냥 매년 결혼하는 사람들의 숫자가 적어서 그런 것입니다. 남성들이 결혼이라는 것을 선택하지 않아서 그런 것입니다. 연애는 여성이 결정하지만, 결혼은 남성이 원할 때에만 가능하거든요.
 
1988년에 태어난 남성들의 절반만 결혼을 선택했습니다. 앞으로는 어떨까요? 더 떨어지면 더 떨어지지, 앞으로 올라갈 것 같아 보이진 않습니다. 가임기 여성의 수에서 측정하는 합계출산율이 0.5를 깨는 날이 멀지 않아 보입니다.
 
아마 앞으로 우리나라의 출산율을 끌어올리고 싶다면 여성들을 위한 정책이 아니라 남성들을 위한 정책을 만들어줘야 할 것입니다. 그래야 남성들이 결혼하고 싶어질 테니 말입니다. 예를 들면, 결혼을 하면 월급에 가족수당을 팍팍 올려준다거나, 아이를 낳으면 양육수당을 퍽~ 올려주는 식으로 말이니다.

2023년 9월 17일 일요일

알러지의 아이러니

 알러지는 꽤나 귀찮기도 하고, 또는 목숨을 위협하기도 하는 그런 존재입니다. 에전 일본의 영향이 강하가 남아있을 무렵엔 일본 또는 독일의 영향으로 인해 알레르기라고 부르기도 했습니다. 게다가 정확한 미국식 영어 발음으로 하자면 '앨러지'가 맞는 표현이라고 할 수도 있지요. 그래도 일단은 표준 외국어 발음 표기법에 따라 알러지로 지칭하겠습니다.

 

봄이 되면 꽃가루때문에 알러지가 생겨서 고생하시는 분들이 계십니다. 게다가 황사에 알러지를 나타내시는 분도 계시죠. 다만 이제 선선한 바람이 부는 가을이 되면 알러지를 일으킬만한 것들이 많지 않아 고생을 하실 분들이 조금은 줄지 않을까 합니다. 반면 가장 심한 알러지 반응인 아나필락시스를 겪는 분이라면 응급실에서 다른 어떤 환자보다도 먼저 치료를 받을 수 있습니다. 남들이 보기엔 겉으로 멀쩔한데, 모든 의료진들이 아나필락시스 환자에게 달려드는 것을 보면서 '그 환자는 의사나 병원 또는 재단과 관계가 있는 사람인가?' 하는 의심을 사게 하기도 합니다. 실제로 아나필락시스를 겪는 사람의 입장에선 목숨이 왔다갔다 하는 순간이지만 남들이 보기엔 별로 그렇게 보이지 않기 때문이겠죠.

 

알러지를 겪는 분들 중에는 가장 흔한게 봄철 꽃가루 알러지가 있을 것이고, 그 외에도 땅콩 알러지나 고양이 털 알러지 등등 이 세상에 존재하는 수많은 것들에 대해 알러지는 갖는 분들이 다양하게 많이 있습니다. 심지언 두유에 알러지가 있는 분도 있고, 오렌지 쥬스에 알러지가 있는 분들도 계시더군요. 인터넷 커뮤니티에서는 고양이 털 알러지 때문이 이혼까지 한 사람의 이야기가 있는 것을 보면 알러지는 그냥 단순하거나 쉽게 볼 존재는 아닌가 봅니다.

 

이렇게 다양한 물질들에 대해 알러지가 존재합니다. 알러지라는 것은 면역학적으로는 과민성 면역반응입니다. 알러지의 영어적 해설이 Hypersensitivity Immune Response인 것을 보면 그렇지요. 즉 알러지라는 것이 인체의 면역 반응이 과도하게 예민하게 반응을 하는 것입니다. 그러다보니 알러지가 있는 사람만이 가지는 특성이 하나 있습니다. 그것은 암과 같은 질병에 상대적으로 걸릴 확률이 줄어든다는 것이지요. 암이라는 것이 체내의 세포에 이상이 생겨 더 이상 성장을 하지 않고, 계속해서 증식만 하는 것입니다. 사람으로 치자면 갓 태어난 아기가 어른으로 성장해서 자신의 역할을 수행하고 늙으면 죽어야 하는데, 갓 태어난 아이가 성장은 하지 않고 계속해서 자손을 낳는 행위를 한다고 볼 수 있는 것이죠.

 

그러다보니 인체에는 이렇게 이상이 생긴 세포를 인식하고 죽이는 시스템이 존재합니다. 그런데 알러지가 있는 사람들은 이런 면역 반응이 상대적으로 예민하게 반응을 하는 것이라서 이렇게 암으로 변한 세포를 남들보다 먼저, 빨리 인식하고 죽일 수 있습니다. 암 세포가 생겨서 증식을 하려고 하면 이를 인식해서 남들보다 빨리 제거하는 것이죠.

 

그런데 알러지라는 것이 이런 양면성만 있는 것도 아닙니다. 너무나 예민하게 반응을 하면 자신의 정상인 세포를 비정상적인 세포로 인식하고 죽이는 행위를 하기도 합니다. 이런 대표적인 경우가 바로 류마티스 관절염이지요. 자신의 관절을 형성하는 관절 세포들을 자신의 세포가 아닌 것으로 인식하고, 이것들을 죽이는 행위를 해서 생기는 관절염이 바로 류마티스 관절염입니다. 이렇게 류마티스 관절염을 앓는 환자에게는 면역 억제제를 복용시켜야 증세의 완화를 기대할 수 있는데, 그렇게 되면 외부 병원균에 대한 저항성이 떨어지는 현상이 나타나게 됩니다. 그래서 적극적으로 면역 억제제를 투여할 수 없는 상황이기도 하죠.

 

이렇게 면역 체계와 관련된 질병으로는 AIDS가 있습니다. 후천성 면역 결핍증의 영어 약자 표현이지요. 이 병은 HIV가 감염됨으로 인해 발병하게 됩니다. HIV는 인간 면역결핍 바이러스입니다. HIV 양성(+)으로 나타났다고 해서 바로 AIDS가 나타나는 것은 아닙니다. AIDS는 면역 결핍 증상이 나타난 경우이고, HIV 양성(+)이라고 바로 증상이 나타나지는 않기 때문이죠. HIV 양성(+)으로 나타났어도 꾸준히 치료를 하면 증상이 더 천천히 나타나거나, 또는 증상의 발현을 억제할 수 있습니다. 실제로도 HIV 양성(+)으로 나타난 환자에 대해 완치한 경우도 실제로 나타나고 있기 때문입니다. 사실 이 경우는 완치라는 표현이 애매합니다. HIV가 양성(+)으로 나타났다고 하더라도, 실제로 AIDS로 병징이 나타난 것이 아니기 때문이죠. 실제로 병이 발현되지 않았는데 완치라고 할 수 있는지는 모르겠습니다. 위암과 같은 경우는 그 증세가 1기가 되었든, 2기~4기가 되었든 병이 발현한 상황에서 그 병의 치료가 이뤄지면 완치라고 할 수 있지만 HIV 양성(+)인 환자가 병이 발현하지 않았음에도 HIV 음성(-)이 되었다고 완치라고 할 수 있는지는 의학적인 분야라서 제가 뭐라고 정의내리기 힘이 듭니다.

 

아무튼 알러지라는 것이 꽤나 귀찮고, 더러는 목숨을 위협하기는 해도 양면적인 측면이 있는 것은 사실입니다. 그렇지만 알러지가 있다고 해서 꼭 귀찮고 않좋은 것만은 아니라는 것이죠. 알러지가 없는 사람들에 비해 암에 걸릴 확률이 줄어든다는 것은 어쩌면 장점이 되지 않을까 합니다. 

LFP 배터리 차들을 어이 할꼬?

   중국에서 판매하거나 수출하는 대부분의 전기차는 배터리로 LFP(리튬, 인산, 철)를 사용하고 있습니다. 물론 국산이라고 LFP를 사용하는 전기차가 없지는 않습니다. 기아 레이 전기차가 그렇고,  KG 모빌리티에서 판매하는 전기차들이 LFP를 배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