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물학계에는 '백번째 원숭이 효과'라는 아주 오랜 이론이 있다. 일본의 한 연구자가 발표한 논문으로 인해 알려진 내용인데, 이것은 한 무인도에 사는 원숭이 집단에게 먹이로 자연 상태에 가까운 고구마를 주면서 발견한 이론이다. 갓 캐낸 고구마를 흙이 묻은 상태 그대로 공급하였고, 원숭이들은 처음에는 흙을 털어 먹기 시작했다. 그러다가 무리들 중 젊은 암컷 원숭이들이 그 고구마를 바닷물에 씻어 먹기 시작하였다. 그냥 흙을 털어낸 것보다는 고구마는 깨끗이 씻겼을 뿐 아니라 바닷물의 짠 맛이 더해져 오히려 더 단맛이 나는 것이었다. 그리고 그런 현상은 전체 원숭이 무리들에 퍼져 다른 원숭이들도 따라 해 바닷물에 고구마를 씻어 먹기 시작하였다. 이것을 처음 발표한 학자는 원숭이 무리가 약 백 마리 정도가 되면 무엇인가 새로운 시도를 하는 이들이 나타나기 시작하고, 이것이 더 좋으면 무리의 다른 이들도 따라하게 된다는 내용으로 발표를 하였다.
이것은 나중에 자연의 변화에 대해 어느 정도 이상의 무리가 되면 새로운 시도를 하는 이들이 나타나게 되고, 이런 변화에 대한 적응이 이루어지면 자연계에 새로운 경향이 나타나게 된다는 것으로 발표되었다. 이런 자연의 변화에 대한 적응을 통해 동물들의 행동 변화가 나타나게 되면 이것이 곧 진화의 경향으로 나타나게 되는 것으로 발표되었다.
그 원숭이 무리들 가운데에서도 젊은 암컷이 가장 먼저 변화를 시도하였으며, 나중엔 젊은 수컷들이, 그리고 늙은 암컷들이, 마지막으로 늙은 수컷들이 그런 변화를 받아들이게 되었다. 무엇인가 새로운 시도를 통해 생물 종들은 행동의 변화를 하게 되고, 이것이 나중에는 진화라는 과정으로 나타나는 것으로 이해되었다.
그런데 최재천교수는 그의 저서에서 똑같은 현상에 대해 언급하면서 '늙은 수컷들이 기존의 행동을 고수함으로서 전통이 유지된다'라고 서술하였다. 그 구절을 읽자마자 '이런 개%&'라는 욕이 튀어나왔다. 과연 그가 생물학을 전공한(세부적으로는 개미가 주 연구분야이지만) 학자가 맞는지 의심이 되었다. 읽고 있던 그의 저서를 집어 던진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이것은 마치 내가 한동대에서 만난 한 교수가 '창조론이 맞다는 것을 입증하기 위해 분자생물학을 연구한다'라는 말을 듣는 기분이었다. 성경에 나온 창조론의 참된 의미는 생명의 존엄성에 관한 것이지, 그것이 생물들이 진화를 거치지 않았다거나, 신의 섭리로 인해 동물들이 변화, 발전해 나갔다는 것은 아닐 것이다. 최소한 나도 이십 년 가까이 교회를 다녔었고, 세례도 받았지만 결코 창조론이 과학적으로 맞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사실 최재천교수가 언급한 내용 말고도 개인적으로 교수로서 그를 별로 존경하지 않는다. 그가 서울대 교수로 재직하고 있다가 이화여대로 옮긴 이유를 대강 추측할 수 있기 때문이었다. 서울대는 세계적 대학들과 경쟁을 하다보니 교수들의 연구 업적에 대한 압박이 제법 심한 편이다. 하다못해 서울대를 졸업하고, 인하대 화학과 교수로 재직하는 작은 외삼촌도 괜히 교수됐다고, 차라리 의대나 갔으면 돈이라도 실컷 벌었을 것이라고 한탄하곤 했었다. 그나마 경희대 교수로 있는 큰 외삼촌은 '이건 그저 내 업보지'라며 말을 아끼신다.
최재전교수 입장에서는 연구 성과에 대한 압박이 있는 서울대보다는 이화여대 교수로 가면 대중 강연도 자주 다닐 수 있을 것이고, 연구 성과에 대한 압박도 서울대보다는 덜 했을 것이다. 또한 SCI급 논문을 내는 것 대신 대중 교양을 위한 서적을 집필해도 연구 성과로 갈음이 되기 때문에 굳이 논문을 제출할 필요도 없어진다. 게다가 대중 강연을 다니면 한 번에 수 백 만원의 강의료가 들어오는데, 마다 할 일이 없지 않은가. 그리고 대중 강연이라는 것도 레퍼토리 두, 세 가지 정도를 준비하면 매번 대상이 달라지기에 몇 년은 충분히 우려먹고도 남는다.
나도 미생물학을 10년간 대학에서 강의를 했었지만, 강의 대상이 간호학과에서 식품영양학과로 바뀌었을 때를 제외하곤 강의록을 전면 개편하거나 하지는 않았었다(생화학을 강의하기도 했었고, 바이러스학을 하기도 했었지만 1학기만이었다). 물론 같은 학과에서, 같은 과목을 강의해도 매년 내 강의를 듣는 학생들은 바뀌기 때문에 강의록을 전면 개편하지 않았다. 다만 매년 새로 나온 과학적 발견이나 소식이 있으면 강의록에 첨가하여 개편하기는 했다. 하지만 어차피 같은 간호학과 학생들을 대상으로 하기에 주로 병원성 미생물에 대한 것과 미생물에 의한 오염과 감염같은 내용이 주를 이룬다. 반면 식품영양학과 학생들이 대상이라면 달라져야 한다. 발효에 관한 내용과 식품 생산 과정에서 생길 수 있는 오염의 방지 등으로 강의 내용을 달리 한다.
그런 최재천 교수가 진화생물학자들을 만나 인터뷰한 책을 냈다는 어느 블로거 분의 리뷰를 읽었다. 그것도 꽤 오래 전에 인터뷰한 것을 책으로 정리해 낸 것이라고 한다. 그 리뷰에 댓글을 달려다가 내 주제에 뭐를 안답시고 글을 올리나 싶어 참았다. 또한 최재천 교수가 썼다는 그 책도 읽지도 않을 것이다. 자연계의 변화에 대한 행동의 변화, 그리고 그런 적응 과정을 통해 생물들이 진화해 나갈 수 있다는 사실에 대해 전면 부정하는, 오히려 늙은 수컷에 의해 전통이 고수된다는 이론을 들이미는 그의 책을 도저히 편안한 마음으로 읽을 생각이 없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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