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 년 전부터 흰머리가 나기 시작했다. 그것은 아마도 마흔 중반을 지날 시점이었을 것이다. 조금씩 새치가 비치기 시작하더니 오십이 넘으니 부쩍 흰머리가 늘어나게 되었다. 아직도 새치조차 잘 안보이는 아버지와는 다르게 흰머리가 무성한 어머니의 유전 영향인 듯했다. 아버지보다 아들이 흰머리가 많은 그런 상황이라니, 염색이라도 해야 하나 생각이 들었다. 그러다 문득 머리를 감기만 해도 흰머리가 검게 염색된다는 샴푸가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제법 비싼 가격에 팔리기는 했지만 이발소에서 알아본 염색 가격을 생각해보면 한 번쯤 사서 써 보는 것도 나쁘지 않아 보였다. 어머니께 얘기드리고 인터넷으로 사려고 했는데 어느 날 어머니가 먼저 사서 선물로 주셨다. 한 병에 삼만 오천 원이라는 만만치 않은 가격이기에 감사히 쓰겠다고 했다. 그래서 한 달여를 사용하고는 머리를 깎으러 갔다. 이발사님께 물어보니 별로 염색이 되지 않은 것 같다고 한다. 일부러 염색을 하게 만들려는 수법인가 의심이 들기는 했다. 어머니는 사주신 때문인지, 뒷머리가 많이 검게 되었다며 효과가 있다고는 하신다. 샴푸를 사용하다가 흘러내린 용액을 방치한 적이 있었다. 바싹 말라버린 샴푸 용액은 제법 검게 변해 있기는 했다. 어쨌든 샴푸로 인해 조금은 검게 될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기는 했다. 그럼에도 내 눈에 보기엔 눈에 띄는 확연한 변화가 보이지는 않았다. 과연 이런 비싼 금액을 지불하며 사용할만한 가치가 있는지 돌아봐야 했다.
그러다가 문득 삼푸 용액이 공기와 반응을 오래 하면 검게 변한다는 사실에 집중하기 시작했다 그렇다면 머리를 감는 방식을 바꾸면 뭔가 변화가 있지 않을까? 그런 생각이 들자 머리 감는 방법을 바꾸기로 했다.
일반적으로 아침에 일어나 머리를 감고, 세수를 할 때에는 머리부터 먼저 감고 헹구고 난 뒤에 세수를 한다. 그렇다면 뭔가 순서를 바꾸면 된다. 머리를 샴푸로 감은 뒤 바로 헹구지 않고 그대로 세수를 하기로 했다. 그리고 세수를 마친 다음에 샴푸에 적셔진 머리를 헹구면 된다. 그러면 머리카락이 삼푸에 적셔진 시간이 길어지게 될 것이다. 그러면 뭔가 변화가 있지 않을까? 그런 생각이 들자 다음날부터 바로 실행에 들어갔다.
그렇게 머리를 감는 방법을 바꾼지 한 달이 지났다. 아직은 뭔가 눈에 띄는 변화가 보이지는 않는다. 그래도 당분간은 이 방법을 유지할까 한다. 어쨌든 샴푸 용액이 공기와 접촉하면 색이 변하는 것을 눈으로 봤기 때문이다. 부디 아버지보다 흰머리가 많아지지만 않았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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